어려운 어른하기

Posted 2009/12/28 23:52, Filed under: 분류없음

서른 즈음에 나 같은 사람들은 고등학생들을 보고 말한다.
그래도 그 때가 제일 좋은거야.

고등학생 때의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너희들이 뭘 알아?

지금의 나도 그 때와 생각은 다르지 않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때의 나에 비교해 지금의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일 때와 어른의 지금을 비교해보자면, 그래도 그 때가 조금 나은 것 같기는 하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렸을 때 즐기던 수많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들처럼, 일정한 간격마다 Goal이 존재한다. 더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더 좋은 점수를 맞고, 최종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이런 일련의 가시적인 성과들이 게임의 스테이지 끝판대장들처럼 늘어서 있고, 우리는 그것에 도전하여 좋든 싫든 어떠한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그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 역시 즉각적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이루어지며, 대개의 것들은 일정한 시기가 정해져있다.

일정한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말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도전해야만 하고, 그 결과가 공개된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벌어지면 어떻게든 수습이 되게끔 되어 있고, 우리는 공인된 성적표처럼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평가를 받은 채 학창시절을 마치고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에 떨어 그 도전조차 자꾸만 미루고 사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그 나름의 삶 속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세상은 냉혹하며, 집단이 돌아가는 원리는 개개인을 결코 배려하지 않는다. 누구나 노력한만큼의 결과를 보상받지는 못하며, 그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설령 헛되지 않았더라도 그 노력을 상쇄하는, 개인의 힘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요소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평가 역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체벌도 차별도 없지만, 인생에 필요한 다음의 단계를 준비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남들이 가진 것들을 갖지 못한 자의 설움을 배워가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자위하기 어려워진다. 어느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그 사람과 어울리려 하는 사람들의 계층이 제한되기 시작하며, 그럴수록 사회 안에서 나의 위치를 확장하기는 어려워진다.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듣기 시작한다. 사람은 참 좋은데 말이야......

그래서. 어른은 조금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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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help falling in Love

Posted 2009/12/16 19:58, Filed under: 분류없음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그것이 인생

상처를 준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가슴 설레이는 것도
그렇게 쓰라림과 환희를 거듭하면서 까맣게 태워버린 속도
결국은 어쩔 수 없다면서 다시 한 번
식어버린 마음속에 불을 지핀다.

당신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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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 스토리

Posted 2009/09/07 22:05, Filed under: 분류없음
엘리베이터에서 A양이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왔을 때 짐짓 놀랐다. 100명 남짓한 직원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그저 스쳐지나가면서 몇 번 얼굴을 본 것 뿐인 남자에게, 그것도 여자가 먼저 말을 붙여온다는 것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기껏해야 '엘리베이터 좀 잡아주세요'와 같이 필요에 의한 부탁이나, '거기 뭐라고 쓰여있는 거예요?"와 같은 의문도 아니고, 대화를 이끌어 낼 아무런 소재가 없는 상황에서 A양은 나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세요?"

그리고 오늘, 다시 한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A양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성북동에 비둘기가 많아요?"

말을 붙일 핑계를 찾고 있는 거라면, A양의 선택은 썩 훌륭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무언가에 직접적으로 속해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인식들은 몹시도 허황되거나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경우이다. 고등학교 때 막연히 배운 '성북동 비둘기'라는 이름으로 이 동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야 성북동과 비둘기를 연관시키겠지만, 난 사실 마로니에 공원을 벗어나서 우리집까지 오면서 맹세코 한 마리의 비둘기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참신함도 없는 이 '비둘기드립'은, 확실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A양과의 대화는 이렇게, 어색하게 시작되었다. 사당에 사는 A양은, 사당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며, 탤런트 김범을 좋아한다. 김범이 후배라니 사인 좀 받아달라는 말 역시 그리 좋은 친교의 표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 . .


초등학교 시절, 금산으로 잠시 내려가 생활한 적이 있었다. 친구도 없었던 나에게 하교길에 한 아이가 말을 걸었다. 다짜고짜 내 이름을 묻더니,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리고 우린 이내 친구가 되었다. 그것이 20년 남짓 옛날 일이다.

나이를 먹은 내게, 또 우리에게,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릴까 두려워, 이래저래 말 붙일 핑계를 찾고, 그러다보니 유머있는 사람이 인기가 있는가보다. 그런 세상에서 온전히, 아무런 포장도, 말돌림도 없이 단순히 '나랑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할 수 있는 동심은, 이미 먼 옛날의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난 여전히 A양의 이름을 모른다. A양도 아마 나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그냥 사는 동네를 아는 사이일 뿐이다. 내일은 몰래 A양의 뒤를 돌아가, 책상 위에 있는 이름표를 보아야겠다. 내게 먼저 손내밀어 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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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Posted 2009/09/04 20:48, Filed under: 분류없음
사랑은 상처다.
누군가를 깊이 만나고 알게 될수록 상처입게 되고
그러기에 누군가와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진지한 관계보다는,
그저 가벼운 농담이나 주고받고,
하룻밤의 알코올에 취해 몸을 섞는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상처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난,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상처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의 끝없는 반복이다.

뼈가 드러날 만큼 살점이 파여 피가 나면,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그 위에 약을 뿌려
상처가 낫고 다시 하얀 새 살이 돋아나고,
그렇게 돋아난 새 살은 원래의 살과는 또 다른 탄력과 질감을 갖는다.

그렇게 나란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상처 입고
그 상처가 나아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내가 되어간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두려워 안으로 숨어들기만 하면,
상처는 흉터로 남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괴로워도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낫기 위해서,
다시 상처받더라도
지금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면서 나를 살찌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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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changes.

Posted 2009/08/30 18:11, Filed under: 분류없음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이란
열 번 중에 아홉번 쯤은 어긋나게 마련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는
열 번 중 한번의 이어짐에 희망을 갖게 되지만,
그 관계가 지속되면
아홉번의 어긋남에 실망하고 서운하게 된다.

과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아쉬워하거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사람의 본성일 것이다.

지금의 너는
그 변화의 중간에서
어디쯤 와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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